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야 문명 (문단 편집) == 기술 == [[파일:main-qimg-7d0e66da8fd8f1ab72763725fb1428e9-lq.jpg|width=400]] [[바퀴(도구)|바퀴]]를 이용한 마야인들의 장난감. 당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퀴를 발명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야인들의 기술은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결코 원시적이라고 볼 수 없는 정교한 디자인의 건물들과 거대한 도시들을 세웠던 문명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야금술]]이나 제련술을 할 줄을 몰라 철기 등의 고급 금속을 주조하지 못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마야에는 인근의 [[잉카 제국]]만큼 제대로 된 황금 유물이 남아있지 않다. ] 마야인들이 사용한 모든 도구들은 나무와 돌같이 원시적인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가장 기초적인 금속인 [[청동]]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수레]]와 [[바퀴(도구)|바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대규모의 물자 운송이 불가했다.[* 이는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지만 바퀴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더 자세한 내용은 후술.] 그렇다고 해서 마야인들이 [[원시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마야인들은 [[0]]을 사용하는 등 수학적으로 상당히 발전해 있었으며, 10, 100, 1000 등을 나타내는 별개의 기호가 있었던 [[중국]]이나 [[로마]] 등과는 달리 마야인들은 [[인도]]에서 만들어진 [[아라비아 숫자]]에서처럼 0과 자릿수를 이용했다. 유라시아의 대부분의 문명과는 달리 마야 문명에서는 20진법을 사용했다는 차이는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숫자체계는 마야문명에서 발명한 것이 아니라 더욱 이전의 문명인 [[올멕]] 문명에서 이미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20진법은 조금 특이한데, 보통의 기수법에서는 예를 들어 10진법이라면 자릿수가 1, 10, 10^^2^^, 10^^3^^, 10^^4^^ , … 이렇게 나가지만, 마야 문명에서의 20진법은 1, 20, 18×20, 18×20^^2^^, 18×20^^3^^, … 이렇게 나간다.] 이와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수법과는 대조적으로 마야문명을 포함한 아메리카의 문명에서는 구대륙과는 달리 고급 [[야금술]]이 없었으며[* 금과 은 구리 같은 금속을 주조하여 제련하는 수준의 야금술은 있었다. 무기를 아예 만들지 않은것은 아니나 대부분 의례용이고 그마저도 흔하지는 않았으며 철기기술은 없었다.] 그마저도 기원후 600-800 년경에 서부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메소아메리카의 야금술은 에콰도르 지방을 통한 해양 교역으로 처음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미의 잉카 문명과 달리[* 신대륙의 야금술은 기원전 2000년경에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 처음 나타난다.] 메소아메리카의 야금술은 발달이 늦은 편이였다. 제련술이 없었을때는 금, 은 같은 귀금속의 자리를 비취(옥) 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퀴(도구)|바퀴]] 또한 물자 수송에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말(동물)|말]]이나 [[소]] 같은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들 중 하나가 마야인들이 [[바퀴(도구)|바퀴]]를 발명하지 못했다는 오해다. 사실 마야인들도 바퀴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바퀴를 쓰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야인들의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면 소의 형상 아래에 조그마한 바퀴들이 달려있는 모습이다. 이런 구조의 바퀴 달린 장난감을 만들 수 있었다면 당연히 수레나 이동수단에 바퀴를 붙이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야 문명이 발원한 열대우림 지대는 극도로 바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옮기기가 까다로운 열대우림 + 늪지대 + 석회 구릉 구조였던데다가, 결정적으로 [[당나귀]], [[말]]. [[소]]처럼 바퀴를 끌 거대한 가축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바퀴를 못 쓴게 아니라 안 쓴 것'''에 더 가깝다. 허구한 날 비가 오고 움푹 파인 길에 물웅덩이들이 질척질척거리는 곳이었던 탓에 바퀴의 효율성이 극도로 저하된 탓도 있었다. 의외로 건축술은 현대인들의 생각에 비하여 떨어지는 편이었다. 극도로 정교한 건축술과 계산을 요했던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이집트|피라미드]]들과는 달리 마야인들의 피라미드는 훨씬 필요한 지식과 건축 기술이 낮은 편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들은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깎아 하나하나 쌓아올렸고 그 규모도 압도적으로 거대해서 높은 수준의 수학적, 공학적 지식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마야 피라미드의 경우 자갈을 대충 쌓아올린 뒤 겉면만 층층이 바위로 포장하고 석회를 바른 것에 불과하다. [[아치]]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몰라 '코벨 아치'라는 [[사다리꼴]] 모양의 구조를 사용해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코벨 아치란 돌들을 벽에서부터 경사지게 비스듬히 쌓아올려 천장에서 서로 맞대게 하는 건축 기법으로, 아치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지고 내부 공간도 협소하다. 하지만 코벨 아치보다 더 나은 기법을 찾지 못한 마야인들이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천문학]] 수준은 대단히 뛰어났다. 마야 문명의 천문학 수준은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은 문화권들 중에서는 독보적인 원탑인 수준으로 높았다. 마야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보다도 더 정확하게 회합 주기를 계산할 수 있었고 열대 태양력의 경우 [[스페인]]보다도 더 실력이 좋았다. [[춘분]]과 [[추분]]의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이에 맞추어 천문대를 세우거나 신전의 위치를 맞췄고, 천체의 운동에 따라 사원들의 위치를 정렬시키기도 했다. 마야인들은 두 종류의 달력이 있었는데 하나는 트졸'킨이라고 260일짜리 달력이었고 하나는 하아브라고 365일짜리 달력이었다. 열대 태양력의 1년이 정확히 365일이 아니라 365.2422일인 것도 이미 알고 있어서, 1,508일마다 하아브에서 1일씩을 빼서 균형을 맞추었다.[* 365 x 1,508 = 365.2422 x 1,507 정도로 대략 맞아떨어진다. 일부러 1일을 뺀 다음 주기를 다시 시작해 계산을 맞추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점점 오차가 누적되었는데, 이 것도 따로 계산해 달력을 다시 맞췄다.] 마야인들은 [[수성]]과 [[금성]]과 [[화성]], [[목성]], [[토성]]의 공전을 관측했으며 이를 모두 문서에 기록해 남겼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대표적인 천문 문서에는 '드레스덴 코덱스', '마드리드 코덱스'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스페인 선교사들이 마야인들의 기록들을 우상이자 악마의 문서라고 여겨 보이는 족족 불태워버려서 남은 게 많지 않은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